
글 | 염은별
우리 주변에 교제 폭력 피해자가 있다면 이를 알아챌 수 있을까? 교제 폭력은 외딴곳이 아닌,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평범한 일상 안에서 벌어진다. 피해자는 두려움이라는 그림자에 숨고, 가해자는 연인이라는 이름 뒤에 숨는다. 교제 폭력은 왜 반복되고, 왜 멈추지 않는지 알아보자.
0. 교제 폭력에 대한 인식_재학생 설문조사

사진1 – 교제 폭력 재학생 설문조사 (출처: 자체 제작)
본교 재학생 51명을 대상으로 ‘교제 폭력’에 대한 인식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모든 응답자가 ‘교제 폭력’을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현재 처벌과 형량에 관한 질문에는 ‘아니오’가 85%로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했다. 그 이유로는 ‘피해자가 받는 고통에 비해 처벌이 약하다.’, ‘연인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형벌을 쉽게 피하는 것 같다.’, ‘조치가 잘 이뤄졌다면 피해 사례는 줄어들었을 것이다.’와 같은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다음으로, ‘피해자가 신고를 못 하는 가장 큰 이유’에 대한 질문에는 ‘보복 및 추가 피해에 대한 두려움’이 86%로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 피해자를 위해 가장 시급한 조치로는 ‘가해자 격리 및 접근 금지 강화’가 뽑혔다. 이는 현재 피해자를 위한 제도가 많지 않다는 점이 반영된 결과다. 한편, ‘반의사 불벌죄를 아는가?’라는 질문에는 ‘아니오’ 응답이 75%였다. 해당 법안을 아는 이들은 ‘양날의 검이라고 생각한다.’, ‘가해자의 보복이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등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등의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이어 ‘반의사 불벌죄 폐지’에 대해서는 88%가 ‘예’로 답했다.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재범의 가능성이 있다.’ 등이 대부분의 이유였다. 반면, ‘피해자가 굳이 원하지 않는다면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피해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등의 답변도 많았다. 이번 설문 결과는 교제 폭력에 대한 인식은 높지만, 여전히 제도적 보완과 실질적인 피해자 보호 대책이 시급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1. 사랑일까?
1-1.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친밀함이라는 탈을 쓴 채 일상을 파괴하는 ‘교제 폭력’이 잔혹한 범죄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교제 폭력은 연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신체적·정신적·경제적·성적 폭력과 통제 행위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는 단순한 연인 간의 갈등으로만 인식해 가벼운 다툼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교제 폭력은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뿐만 아니라, ‘썸’과 같이 호감을 가지고 만나는 단계나 이미 결별한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까지 모두 포괄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사진2 – 교제 폭력 사건 분석 (출처: 연합뉴스)
그렇다면 교제 폭력은 어떻게 시작될까? 가장 큰 문제는 직접적인 가해가 나타나기 전, 대부분의 피해자는 자신이 위험한 관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해자는 대개 ‘사랑’이나 ‘걱정’이라는 명목으로 상대의 자유를 교묘하게 구속한다. 연락 집착이나 비하, 가스라이팅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가해자는 상대의 만남을 사사건건 간섭하며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기도 한다. 휴대폰 비밀번호를 요구해 메시지·통화 내역을 확인하거나 옷차림·화장을 통제하려는 태도 역시 교제 폭력의 명백한 전조 증상이다. 이는 향후 물리적 폭력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은 신호인 만큼, 반드시 경계해야 할 위험 신호다.
1-2. 빗나간 사랑

사진3 – 교제 폭력 유형 (출처: 이젠센터)
교제 폭력은 신체적 가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가장 대표적인 유형으로는 직접적인 신체적 폭력과 상대방에게 굴욕감과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적 폭력이 꼽힌다.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정서적 학대의 일종인 가스라이팅이다. 가해자는 가스라이팅으로 관계의 상황을 조작해 피해자가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세뇌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오히려 피해자인 척 연기하거나, 피해자의 말·감정·기억 등을 부정하며 심리적 혼란을 유도한다. 특히 가스라이팅의 주요 대상이 되는 피해자 유형 중 하나가 바로 ‘에코이스트’다. 에코이스트는 자기애적으로 보일 것을 두려워하며, 타인을 과도하게 배려하고 자신의 욕구를 억제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평소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꺼리며, 상대방을 과도하게 배려하는 성격 때문에 가스라이팅에 비교적 쉽게 노출된다. 가해자는 이들의 배려심과 자기성찰적 태도를 악용해 심리적 지배력을 강화하고, 물리적 폭력까지 이어지게 만든다.

사진4 – 교제 폭력 형사입건 수 (출처: KBS News)

사진5 – 충청권 교제 폭력 실태 (출처: 충청투데이)
교제 폭력의 피해자는 70% 이상이 여성으로, 그중 20~30대가 가장 많았다. 가해자 또한 같은 연령대가 대다수지만, 76%가 재범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까지의 전체 신고 건수는 398,983건이다. 그중 충청권 내 교제 폭력의 신고 건수는 2020년 5,186건에서 2024년 9,930건으로 약 5년 새 두 배 가까이 폭증했다. 2025년에는 7월 기준, 1월부터 5월까지 4,357건이 접수됐다. 이렇게 신고 건수는 해가 지날수록 증가하는 반면, 실제 검거로 이어지는 비율은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25.5%였던 2020년의 검거율은 2025년 5월 14.3%를 기록해 역대 최저 수준을 보였다. 검거 인원수 역시 2020년에서 2021년으로 넘어가며 수치가 증가했지만, 2022년에는 다시 1,337명으로 줄어들며 증감을 반복하고 있다. 이후, 2025년 5월까지는 625명이 검거됐다. 여전히 신고 건수는 급격히 늘어나는 데 반해 검거율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어, 교제 폭력에 대한 법적 대응과 수사력 강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2. 잘못된 방식
2-1. ‘사랑’과 ‘범죄’
최근 국내외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들을 통해 교제 폭력이 심각한 공적 재난임을 증명하고 있다. 다음의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사진6 – 대전 탄방동 여자 친구 살인사건 (출처: TJB News)
첫 번째, 2024년 3월에 발생한 ‘대전 탄방동 여자 친구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은 교제 폭력과 더불어 약물 범죄의 잔혹성을 보여줬다. 당시 피의자는 이별을 통보했다는 이유만으로 연인의 주거지를 찾아가 흉기를 휘둘러 살해했다. 피의자는 피해자의 남자관계를 의심하며 말다툼을 벌이다 범행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가 마약을 투약한 정황이 드러나며 큰 충격을 줬다. 법원은 피의자의 폭력성과 범행의 중대성을 인정해 징역 30년의 중형을 선고하며 강한 법적 책임을 물었다. 이 사건은 마약 투약 상태에서 벌어진 교제 살인에 대해 사법부가 엄벌 원칙을 분명히 한 판결로 평가된다.

사진7 - 동탄 납치 살인사건 (출처: AAA News)
두 번째, 2025년 발생한 ‘동탄 납치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은 치밀하게 준비된 계획범죄의 전형을 보여준 사례다. 피의자는 피해자를 강제로 차량에 태워 납치한 뒤 살해하는 잔인함을 보였다. 사건 이전 피해자는 전 애인의 폭행·강요·협박 등을 호소하며 9차례에 걸쳐 경찰에 신고하고, 관련 혐의로 정식 고소장도 제출하며 구속 수사와 강화된 보호조치를 거듭 요청했다. 또한, 피해자는 600여 쪽에 달하는 녹취록과 자료를 담은 보충서를 제출했지만, 경찰 측에선 구속 영장 신청 여부를 검토하는 데만 약 40일이 걸려 골든타임을 놓쳤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수사 기관의 부실한 초기 대응과 미흡한 분리 조치가 결국 비극으로 이어졌다는 거센 비판이 제기됐다. 피의자는 범행 후 도주하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에 따라 사건은 공소권 없음 처분으로 종결됐다.

사진8 – 세타가야 한국인 여성 피살 사건 (출처: 네이트 뉴스)
국내에서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한 비극이 발생했다. 2025년 일본 도쿄의 세타가야구에서 벌어진 ‘한국인 여성 피살 사건’은 이별에 앙심을 품은 보복 범죄가 타국에서 발생한 사례다. 피해자의 전 연인이었던 피의자는 결별 선언에 앙심을 품고, 사흘 전 일본 입국 후 피해자를 추적해 살해했다. 사건 이후 일본의 언론은 가해자의 이름과 나이, 얼굴을 공개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범죄자의 신상은 공개되지 않았다. 피의자는 현재 일본 법원에서 살인·스토킹 혐의로 재판받고 있으며, 이 사건으로 재외국민 스토킹·교제 폭력 예방 대책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 세 사건은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지만 명확한 공통점이 있다. 모든 사건의 발단은 이별 통보 과정에서 비롯된 갈등이었지만, 그 배경에는 이미 누적된 폭력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범행 전 가해자의 집요한 통제나 폭력 같은 사전 징후가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났고, 피해자가 과거에 경찰 신고를 했던 이력이 존재했다는 점도 일치한다. 이는 교제 폭력이 결코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며, 반복된 폭력 신호 속에서 예견이 가능한 비극임을 보여준다.
3. 피해자가 숨어야 한다고?
3-1.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의사불벌죄’를 들어본 적 있는가? 반의사불벌죄란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면, 국가가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범죄를 말한다. 단순 폭행·협박·명예훼손 등이 이에 해당하며, 교제 폭력 초기 신고의 70% 이상이 이 범주에 속한다. 이 제도는 피해자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가해자의 악용 사례가 늘어나면서 오히려 독이 됐다. 피해자를 협박하며 강요하거나, 합의를 빌미로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또, 처벌 불원 의사를 밝힌 후 뒤늦게 살해 혹은 폭행 등 2차 가해를 행하는 경우도 변변찮다. 이 때문에 피해자에게 처벌을 원하는지에 대해 질문조차 하지 말아야 하며, 설령 피해자가 해당 의사를 밝힌다 한들, 그와 무관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사진9 – 교제 폭력 법제화 (출처: KBS News)
현재 한국은 교제 폭력을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법이 없다. 그렇기에 교제 폭력으로 접수돼도 가정폭력처벌법 혹은 스토킹 처벌법을 적용하는 것이 한계다. 그러나 가정폭력처벌법은 배우자·가족 등에 대상이 한정돼 있고, 스토킹 처벌법은 ‘스토킹’이라는 행위가 있어야 처벌된다. 이 때문에 교제 관계라는 특수성을 반영한 접근 금지와 같은 보호조치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피해자가 빌미를 줬을 것’, ‘오죽했으면 그랬을까’라는 오해와 낙인이 관련 법안의 입법을 지연시킨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19대 국회 때부터 10년간 28건의 교제 폭력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임기가 끝나 폐기된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교제 폭력’을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이 하루빨리 개정돼야 하는 시점이다.
3-2. 나아지고 있는 사회
그럼에도 사회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경찰청은 2025년 8월, '교제 폭력 대응 종합 메뉴얼'을 전국 경찰서에 최초로 배포했다. 단순 폭행 신고 시에도 스토킹 처벌법을 적극 적용해 피해자 의사와 무관하게 접근 금지 명령과 긴급 응급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해당 메뉴얼은 교제 폭력의 초기 징후를 단계별로 구체화하고, 재범 위험도 평가표 작성까지 의무화했다. 성평등가족부 역시 2026년 5월을 기준으로 교제 폭력 관련 국가 통계 조사 체계 구축을 검토 중이다. 또, 현재 별도로 집계되지 않는 교제 폭력을 공식 통계로 관리해 예산과 인력 투입 근거를 마련한다. 사실혼 관계도 가정폭력처벌법 적용 대상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으며, 실제로 적용된 사례도 생겨났다. 법적 혼인 여부와 관계없이 실질적 부부관계 폭력을 포괄하는 첫걸음인 것이다. 더불어 스토킹 처벌법 적용 사례도 늘어나며 실효성이 입증되는 추세다.

사진10 – 교제 폭력 피해자 지원 제도 (출처: 이젠센터)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곳은 어떤 곳이 있을까? 먼저 ‘1366’은 여성 긴급 전화번호로 24시간 상담으로 초기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신고 시 상담원이 경찰 파출소와 연계해 즉시 접근 금지를 명령한다. 또, 긴급 피난처를 운영해 7일 이내로 긴급 보호도 지원한다. 다음으로 ‘해바라기센터’는 성폭력·가정폭력·교제 폭력을 일체형으로 지원하며 법률·의료·심리 상담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또한, 성폭력 상담소는 피해자 치료 프로그램 운영과 무료 법률 상담도 진행한다. 쉼터, 법률, 의료 등의 관련 기관과 연계도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법률구조공단’은 경제적 여건과 관계없이 변호사 무료 선임이 가능하다. 이외 여러 보호시설은 최대 6개월 무료 거주와 생계비, 주거지 변경에 지원한다. 이렇듯 우리 주변에는 피해자를 위한 다양한 지원 체계가 마련돼 있다. 혼자 감당하기보다는, 주변의 도움과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신의 안전과 일상을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교제 폭력은 사랑싸움이 아닌 인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범죄다.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더불어 피해자가 즉각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안전망이 마련돼야 한다. 사회가 이 문제를 외면하지 않을 때, 비로소 사랑으로 포장된 비극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정보관리부서 : 홍보팀
최종 수정일 : 2026-04-06